대한민국 연예계에는 주연 배우들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에서 묵묵히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는 숨은 보석들이 있습니다. 배우 황범식이 바로 그런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아, 그 분!”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런 배우입니다.
1967년 연극 무대에 첫발을 디딘 이후, 무려 50여 년 넘게 브라운관과 은막에서 활약해온 황범식은 진정한 의미의 ‘국민 배우’라 불릴 만합니다. 화려한 주연 배역보다는 작품의 중심을 든든히 받쳐주는 조연으로서, 때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악역으로서 대중들의 기억 속에 깊이 자리잡았습니다.
그의 연기 여정은 단순히 개인적인 성공을 넘어서, 한국 방송연예계의 성장사와 함께해온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특히 사극이라는 장르에서 그가 보여준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그만의 독특한 외모와 깊이 있는 연기력이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선 소년에서 서울 무대까지
황범식의 인생 이야기는 1946년 9월 23일, 강원도 정선군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정선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외진 산간 지역이었으며, 이곳에서 자란 소년이 훗날 전국구 배우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황범식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언제부터 연기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그가 서울연극학교에 진학한 것은 분명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연극학교는 국내 연극계의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하던 곳으로, 이곳에서의 학습 경험이 그의 연기 철학과 기법의 토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서울연극학교 졸업 후 1967년, 황범식은 마침내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당시는 한국 연극계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시기였으며, 젊은 연극배우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연극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고, 많은 연극배우들이 방송계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0년, 황범식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KBS 9기 공채 탤런트 선발에 합격한 것입니다. 이때 함께 선발된 동기들 중에는 훗날 한국 연예계의 거장이 되는 백윤식, 장항선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같은 시기에 방송계에 입문한 것은 황범식에게 있어 큰 행운이자 동시에 치열한 경쟁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KBS 공채 탤런트로 선발된 것은 단순한 취업을 넘어서, 당시로서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에 진입한 것과 같았습니다. 1970년대 초반 KBS는 국내 유일의 지상파 방송사였으며, 이곳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했습니다.
사극의 명품 조연, 역사 속 인물로 거듭나다
황범식이 본격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사극 장르에서였습니다. 그의 외모와 연기 스타일이 사극의 무게감과 절묘하게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마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상치 못한 카리스마와 깊이 있는 연기력은 사극 속 다양한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대표적인 사극 출연작과 배역들
작품명 | 배역 | 방영연도 |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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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시대 | 이광정 | 2003-2004 | 고려 후기 문신 역할로 정치적 갈등 표현 |
불멸의 이순신 | 배설 | 2004-2005 | 조선 수군 장수로서 복잡한 심리 연기 |
명성황후 | 이 내관 | 2001-2002 | 궁중 내관으로서 세밀한 캐릭터 구축 |
주몽 | 진용 | 2006-2007 | 고구려 건국 서사 속 조연으로 존재감 과시 |
특히 ‘불멸의 이순신’에서 배설 역할을 맡았을 때의 황범식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배설은 실제 역사에서도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인물로, 이순신과의 대립 구도 속에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배역이었습니다. 황범식은 이러한 캐릭터의 복잡성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소화해내며, 단순한 악역이 아닌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황범식이 사극에서 내시 역할을 무려 세 번이나 맡았다는 것입니다. 내시라는 특수한 신분의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감정 표현과 동시에 궁중 예법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가 이러한 역할을 반복적으로 맡게 된 것은 제작진들이 그의 연기력과 캐릭터 해석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무인시대’의 이광정 역할 역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고려 후기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문신의 모습을 통해, 황범식은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욕망을 날카롭게 표현했습니다.
현대극에서의 다양한 시도와 변신
사극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황범식은 현대극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며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넓혀왔습니다. 특히 2019년에 방영된 ‘태양의 계절’에서 황재복 역할을 맡으며, 현대적 감각의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태양의 계절’에서의 황범식은 과거 사극에서 보여줬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다른, 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한 가지 장르나 캐릭터에만 국한되는 배우가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실력파 배우임을 증명하는 사례였습니다.
2021년에 출연한 ‘사랑의 꽈배기’ 같은 일일드라마에서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일일드라마는 사극과는 완전히 다른 톤과 호흡을 요구하는 장르입니다. 보다 일상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으며, 황범식은 이러한 변화에도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에서의 활동은 황범식이 단순히 사극 전문 배우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임을 보여줍니다. 50여 년의 연기 경력 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이 어떤 장르에서든 빛을 발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름보다 얼굴로 기억되는’ 조연 배우의 철학
황범식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매우 인상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어디 가면 ‘탤런트다’라고 하는데 막상 이름을 아무도 모르신다”는 그의 말에는 50년 조연 생활의 쓴맛과 동시에 묵묵한 자긍심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황범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연예계의 구조적 특성상, 주연 배우들에게 집중되는 관심과 달리 조연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조명받을 기회가 적습니다. 하지만 황범식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연의 가치’를 증명해왔습니다.
그의 연기 철학은 ‘주연 못지 않은 조연’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고 스토리에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는 것을 넘어서, 작품 전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캐릭터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황범식이 출연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의 캐릭터들은 단순한 조연이 아닌 ‘핵심 조연’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인공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스토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역할들입니다. 이는 제작진들이 그의 연기력과 캐릭터 창조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정선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
성공한 연예인들 중 상당수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고, 점차 고향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황범식은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향 강원도 정선에 대한 애정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2년간 그는 정선군의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대사 역할을 맡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2023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개인이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 기부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각 지역의 홍보와 인지도 제고가 중요한데, 황범식 같은 유명 인사의 참여는 큰 도움이 됩니다.
황범식의 지역 기여 활동
활동 분야 | 구체적 내용 | 기간 |
---|---|---|
홍보대사 활동 | 정선군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 2022년-현재 |
지역 특산물 홍보 | 정선 오일장, 곤드레 등 홍보 | 지속적 |
기부 활동 | 지역 교육 및 복지시설 기부 | 연간 수차례 |
행사 참여 | 정선 아리랑제 등 지역 축제 참여 | 매년 |
그의 지역사회 기여는 단순한 홍보 활동을 넘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종 기부 활동을 통해 지역의 교육 환경 개선과 소외계층 지원에 힘을 보태고 있으며, 지역 특산물 홍보를 통해 농가 소득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선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곤드레나 정선 오일장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진정한 고향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의 이러한 활동은 해당 지역과 특산물의 인지도를 크게 높이는 효과가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직접적인 도움이 됩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도전 정신
황범식의 또 다른 놀라운 면모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신체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마라톤 풀코스를 여러 번 완주한 경험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마라톤 풀코스는 42.195km의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극한의 스포츠입니다. 일반인도 완주하기 어려운 이 종목을 연예인이, 그것도 60대 이후에 도전한다는 것은 보통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황범식의 마라톤 도전은 단순한 건강 관리를 넘어서,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력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 정신은 그의 연기 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50여 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장르나 캐릭터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마라톤에서 보여준 끈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위원 활동 역시 그의 사회 참여 의식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평창 올림픽은 강원도에서 개최되는 국제적인 스포츠 축제였으며, 같은 강원도 출신으로서 고향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2024년 현재의 활동과 미래 전망
2024년 현재, 황범식은 여전히 현역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2024년 봄에는 정선 출신 배우로서 다양한 지역 행사에 참여하며 팬들과의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생생정보’와 같은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자신의 근황과 함께 고향 정선의 매력을 전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홍보 활동 외에도 그는 여전히 연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과거만큼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는 않지만, 출연하는 작품마다 자신만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50여 년 동안 축적된 연기 내공과 경험이 만들어내는 노련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주요 활동 현황
활동 분야 | 세부 내용 | 횟수/빈도 |
---|---|---|
방송 출연 | 생생정보, 지역 방송 등 | 월 2-3회 |
지역 행사 | 정선 관련 축제 및 행사 참여 | 분기별 1-2회 |
홍보 활동 |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 연중 지속 |
정치 행사 | 지역구 국회의원 행사 참여 | 필요시 |
정치 행사 참여는 그의 활동 중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이는 단순한 사교적 참여를 넘어서, 지역 발전과 주민 복리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연예인으로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